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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1일, 현대 가톨릭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물 중 하나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했습니다. 선종 하루 전 주님 부활 대축일에 성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에게 부활절 메시지도 전하기도 했는데요.. 마지막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향년 88세. 그는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전 세계의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된 이들에게 희망과 연대를 전한 존재였습니다. 그의 죽음은 전 세계적인 애도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그의 삶과 메시지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최초이자 유일했던 교황,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예수회 소속 사제로 시작해 2001년 추기경에 서임되었고, 2013년 베네딕토 16세의 자진 사임 이후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남미 출신 최초의 교황, 예수회 출신 첫 교황, 그리고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한 교황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의 등장은 곧 가톨릭 교회가 전통을 넘어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이었습니다.
동성애자 축복 허용 등 파격적인 행보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장 혁신적인 결정 중 하나는 동성애자 커플에 대한 사제의 축복 허용이었습니다. 이는 가톨릭 교리의 틀 안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조치였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신을 찾는다면, 그를 누가 심판할 수 있겠는가”라고 언급하며, 기존 교리 해석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여성의 교황청 고위직 임명, 이혼·재혼자에 대한 성체성사 논의, 성직자 독신 의무 완화 가능성 언급 등 다양한 진보적 이슈에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보수 세력과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방문…깊은 감동 남겨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방한했습니다.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 것은 1989년 이후 처음이었고, 유족들과 생존 학생들을 직접 만나 따뜻한 위로를 전했습니다. 심지어 일부 유가족에게는 세례까지 주는 모습을 보여주며 전 국민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는 “세월호라는 비극을 통해 한국 사회가 하나가 되었고, 공동선을 위한 연대를 보여줬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종교적 위로를 넘어선, 사회적 연대에 대한 메시지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글로벌 인권 의제로 확장된 교황의 목소리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적 문제를 넘어서 국제 사회의 불평등과 인권 문제에도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냈습니다. 트럼프 정부의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에 반대 입장을 밝혔고,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에 대해선 “어린이를 해치는 것은 잔학한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는 태도를 잃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가 교황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폐렴으로 인한 끝, 그러나 그의 메시지는 계속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2월부터 건강이 악화됐고, 폐렴 진단을 받은 후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과 재입원을 반복했습니다. 결국 4월 21일,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자서전 『나의 인생』에는 “사는 법을 배우려면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문장이 등장합니다. 이는 그의 신념이자 삶의 방식이었으며, 이 메시지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삶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새로운 교황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황선출 방식은 매우 독특하다고 알려져 있지요.. 아래에서 올바로 이해해보시기 바랍니다.
마무리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애는 변화와 포용, 그리고 사랑으로 채워진 여정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남긴 가치를 어떻게 계승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입니다.